대인관계에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온 사람들에게 자기연민(Self-Compassion)은
단순히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유가 시작되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인관계 트라우마, 즉 복합 트라우마의 핵심 상처는 사건 자체보다도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다",
"나는 늘 부족하다"라는 깊은 자기비난에 있기 때문이다.
내면화된 비난의 목소리
복합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지속적인 비난, 무시, 거절, 학대, 방임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을 향했던 타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자신의 목소리로 내면화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발표 중 한 문장을 더듬었다고 해보자.
보통 사람이라면 "아, 좀 떨렸네"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순간이다.
하지만 복합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자동적인 사고의 연쇄가 일어난다.
"역시 나는 안 돼." → "내가 문제야." → "왜 이것밖에 못하지?"
→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볼 거야." → "역시 나는 무능한 사람이야."
단 한 번의 실수가 자신의 존재 전체에 대한 심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친구와의 약속을 깜빡 잊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차, 다음엔 알람을 맞춰야겠다"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이러다 다들 나를 떠나겠지"로 이어진다.
이때 가장 힘든 것은 상처 자체보다도,
상처 입은 자신을 계속 공격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마음대로 끌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이에게 "왜 넘어졌어?", "너는 왜 그렇게 바보 같니?"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아이가 느끼는 고통은 넘어진 사실 하나뿐인데,
그 위에 또 다른 사람의 비난이 더해지면서 고통이 두 배, 세 배로 증폭된다.
복합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내면에서는 이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된다.
자기연민은 무엇을 바꾸는가
자기연민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구나." "그런 일을 겪었다면 누구라도 힘들 수 있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견뎌왔구나."
예를 들어 발표 중 말을 더듬은 그 순간, 평소라면 "역시 나는 안 돼"로 흘러갔을 생각의 흐름을 자기연민은 다음과 같이 바꾼다.
"긴장될 수 있지.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어. 그게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는 아니야."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늘 위험을 감지하던 신경계에
"지금은 공격받고 있지 않다"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마치 오랫동안 경보가 켜져 있던 보안 시스템에 "지금은 안전합니다"라는
신호가 처음으로 입력되는 것과 같다.
그 순간 어깨가 무의식적으로 조금 내려가고,
숨이 깊어지고, 심장박동이 느려진다.
몸은 조금씩 긴장을 풀기 시작한다.
대인관계가 힘든 이유
복합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종종 관계에서 두 가지 극단을 오고 간다.
버림받을까 봐 지나치게 맞춰주거나, 상처받을까 봐 사람을 피하는 것이다.
과도하게 맞춰주는 경우의 예를 들어보자. 친구가 갑자기 약속 시간을 바꾸자고 해도,
본인이 이미 그 시간에 다른 일정을 잡아두었는데도 "어, 괜찮아!"라고 답한다.
동료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슬쩍 넘겨도 거절하지 못하고 떠안는다.
연인이 무례하게 말해도 "내가 좀 예민했나 봐"라며 자신을 탓한다.
거리를 두는 경우의 예도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면, 상처받기 전에 먼저 멀어진다.
단톡방 초대를 받아도 "괜히 가까워졌다가 실망시키면 어떡하지" 싶어 슬며시 빠진다.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생겨도 "어차피 잘 안 될 텐데"라며 먼저 마음을 접는다.
왜 이런 극단을 오갈까? 마음 깊은 곳에 "나는 소중하지 않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면 화를 내기보다 "내가 참아야지"라고 정신승리 한다.
예를 들어 상사가 부당하게 일을 더 맡겨도 "원래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라고 합리화한다.
반대로 누군가 조금만 거리를 두어도 "역시 나는 버려질 거야"라고 느낀다.
친구가 답장을 늦게 했을 뿐인데도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며 며칠을 끓인다.
자기연민은 건강한 경계의 출발점이다
자기연민이 생기면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가능해진다.
"나도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또 약속 시간을 갑자기 바꾸자고 할 때,
예전이라면 "어, 괜찮아!"라고 했겠지만, 자기연민이 자리 잡은 사람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오늘은 그 시간이 어려워. 다른 날로 옮길 수 있을까?"
직장에서 부당하게 일을 떠맡게 될 때도 마찬가지다.
"그건 제 업무 범위가 아니라서, 도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연인이 무례하게 말할 때도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면 저는 속상해요. 다르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이전에는 참는 것이 착한 것이라고 믿었다면, 이제는 나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싫어요", "그건 어렵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 한마디들은 거창한 변화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자신을 뒤로 미루고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 작은 한 문장이 곧 자기 존재를 처음으로 지켜내는 첫걸음이 된다.